태국 최연소 여성 총리, 바람 앞의 등불
태국 최연소 여성 총리 페통탄 친나왓의 정치 생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헌법재판소가 7월 1일 직무 정지 명령을 내린 데다, 지지율마저 2주도 안 돼 20%나 급락하며 9%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헌법재판소가 총리에 대해 직무 정지 명령을 내린 후, 탄핵 심판 본안 심리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1개월에서 3개월까지 걸린다.
관련 기관 및 증인의 자료 제출이 요구되며, 총리에게도 서면 또는 구두 소명의 기회를 준다.
9명의 재판관이 비공개로 평의한 후 다수결로 판결하는데, 5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된다.
2014년 잉락 친나왓 전 총리는 직권 남용으로 약 6주 만에 탄핵됐고, 쁘라윳 전 총리는 2022년 5주 후에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페통탄 총리의 전임자인 세타 타위신 전 총리는 부패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위헌으로 결정 나며 해임됐다. 3개월 이상이 걸렸다.
태국 헌재는 정치적 압력과 사회 혼란을 감안해, 페통탄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 결정을 빠르면 7월 말, 늦으면 8~9월에 내릴 가능성이 있다.
탄핵이 인용되고 현재 집권 여당인 프어타이당이 국회 과반수를 유지할 경우, 새 총리를 추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과 국민 여론에 따라 의회 해산과 총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지지율이 바닥에 이른 페통탄 총리가 기사회생해 총리직을 유지하더라도 상황은 간단치 않다.
연립 여당이 정권 방어를 지속할 경우, 반정부 시위에 따른 사회 불안정이 가속화되고 군사 쿠데타의 명분을 제공해 정치 체제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 태국 정치의 오래된 수순이었다.
어떻게 되든, 페통탄 총리의 선택지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페통탄 총리는 지난해 8월 16일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해임된 세타 전 총리에 이어, 37세로 태국 제31대 총리로 선출됐다.
태국 역사상 고모인 잉락 친나왓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여성 총리였다.
1986년 8월 21일 출생으로, 38번째 생일을 닷새 앞두고 총리에 올랐다.
태국 통신 재벌 친나왓 가문은 페통탄의 아버지 탁신(2001-2006)에 이어 고모 잉락(2011-2014)까지 총 3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즉, 2000년대 이후 25년 가까이 태국을 쥐락펴락해 온 셈이다.
스스로 ‘진보적 자본주의자’라고 칭한 30대의 페통탄이 총리가 되면서, 태국은 탁신 전 총리의 수렴청정을 인정하면서도 경제 회복과 함께 민주주의에 한발 더 다가설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자신의 고모인 잉락처럼 국회의원이나 정부직을 한 번도 맡은 바 없는 페통탄은 순전히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총리가 되기 2년 6개월 전인 2022년 3월, 친탁신 성향인 프어타이당의 자문을 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년 뒤인 2023년 4월에는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1순위로 급부상했다.
당내 인기 1위에도 불구하고, 총선 후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총리직은 세타 타위신 총리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이후 국가소프트파워 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곧바로 최대 여당인 프어타이당의 대표로 선출되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정치 입문 이후 페통탄은 ‘먹고사는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징병제 반대, 1인당 1만 바트(약 40만 원) 무상 지원 등의 정책을 지지했고, 중앙은행의 이자율이 지나치게 높아 중소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LGBT 및 동성 결혼에도 찬성 입장을 보였다.
페통탄은 탁신 전 총리의 3녀 중 막내다.
7살 위의 오빠 판통태, 4살 위의 언니 핀통타와 함께 친나왓 그룹을 이끈다.
조종사 출신으로 부동산 회사 투자 담당 부사장인 사업가 피카카 숙사왓과 2019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막내딸은 총선 14일 전에 제왕절개로 출산했으며, 만삭의 몸으로 선거운동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태국 국립 쭐라롱꼰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영국 서리(Surrey)대학교에서 국제 호텔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후에는 줄곧 탁신 친나왓 가문의 사업에 참여했으며, 21개 계열사의 총 지분이 680억 바트(약 2조 8천억 원)에 달한다.
태국에는 증여세가 따로 없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결과다.
아버지 탁신이 돈과 권력을 함께 누렸던 최전성기의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 2학년 때인 2006년에는 군사 쿠데타로 아버지가 실각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어 28세 때인 2014년에는 고모 잉락 전 총리마저 헌재의 탄핵 결정 후 야밤에 해외로 도피해야 하는 가문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야 했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이 권력욕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태국에 한류가 한창이던 2010년대에 20대를 보낸 만큼, 한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감상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소프트파워의 글로벌 리더라고 표현한 적도 있으며, 2022년에는 서울 이태원 참사를 추도하는 글도 올렸다.
아버지 탁신은 쿠데타로 실각한 후 캄보디아에서 경제 자문을 맡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장기 집권자 훈센과는 막역한 사이로, 훈센은 자택에 ‘탁신 방’과 ‘잉락 방’을 따로 만들 정도였다.
페통탄은 훈센을 방문해 이를 직접 확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각자 다른 언어를 쓰지만, 아버지와 훈센이 각별한 사이였기에 국경 분쟁 관련 사적인 통화에서 훈센을 ‘삼촌’이라 부른 것이다.
또한, 국경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자국의 3성 장군을 ‘반대편 사람’이라 표현함으로써, 한 나라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로서의 품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페통탄 총리의 직무 정지와 함께, 아버지 탁신도 결국 왕실 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10여 년 전 한국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왕실 모독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2023년 8월, 15년 만에 해외 도피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직후 수감됐으나, 수감 첫날 밤 건강 이상을 이유로 경찰 병원에 이송되었고 이후 약 6개월간 장기 입원했다.
이에 대해 ‘특혜 입원’ 의혹이 제기되어 현재 조사 중이다.
페통탄 총리의 정치적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지만, 2000년대 이후 태국 사회를 쥐고 흔들어 온 탁신 가문도 최대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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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70xnv1HIH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