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수세기 동안 태국은 캄보디아 왕위 계승에까지 개입할 정도로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근세에 이르러 태국은 캄보디아 서부 일부 지역(씨엠립, 바탐방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할거하던 19세기 후반,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면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대나무 외교’의 달인 태국은 해당 지역을 프랑스에 양도하게 된다. 이후 캄보디아의 독립으로 이어진 국경선의 애매한 확정, 그리고 태국 내에서의 영토 회복에 대한 논쟁이 불붙으며, 묵혀두었던 갈등이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크메르 루즈 정권과 내전으로 캄보디아가 큰 혼란에 빠진 시기였다. 이때 수십만 명의 난민이 태국 국경을 넘어왔다.
두 나라 사이의 국경 갈등은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경 지역의 프라위한 사원을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본격화됐다. 양국 군대가 총격전을 벌였고, 결국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캄보디아의 영유권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태국 국민 정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