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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산책길의 빈자리
 
  아침 산책길의 빈자리  
     
   
 

아침 산책길에 매일 만나는 태국 할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멋쟁이다.

몇 년을 지켜보니 운동화도 여러 켤레이고, 자주 바꿔 쓰는 모자도 세련됐다.

80대 초중반의 나이에도 후리후리한 키에 허리가 꼿꼿하다.

그의 집은 산책로가 시작되는 골목 어귀에 있다.

6시 45분쯤이면 어김없이 만났다. 인사 외에 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그와의 아침 조우는 몇 년 동안 이어진 태국 일상의 한 자락이었다.

아내가 가끔 홍삼차나 한국 과자를 선물하면 할머니를 통해 어김없이 과일 등으로 보답하곤 했다. 할머니는 산책을 하지는 않았지만 귀여운 고양이 여러 마리를 돌보며 매일 골목길을 깨끗이 쓸었다.

주말 아침이면 장성한 아들이 가끔 오는 듯했지만, 그 외 방문자는 보지 못했다.

​

두 달 전쯤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근황을 물었더니 넘어져 누워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여의 한국 일정을 마치고 산책길에 나선 오늘 아침, 별세 소식을 들었다. 넘어져 누운 뒤로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

이 노부부의 집 담벼락에는 일 년 내내 작은 열매가 쉬지 않고 무수히 열린다.

카란다 베리라고도 하고, 태국어로는 마나우호(มะนาวโห่)라고 한다.

연분홍색에서 붉은색으로, 다시 짙은 자주색으로 익어가며 가지마다 수많은 열매가 매달린다. 다양한 색깔의 열매가 한나무에 달려 있는게 신기하다.

어릴 때 집집마다 뒤뜰에 있던 앵두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시럽과 주스, 잼, 약재 등으로도 쓰인다. 할머니는 한 움큼씩 익은 열매를 따 주곤 했다.

위로를 전하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하늘에 있다”며 “힘을 내 살 것”이라고 말했다.

집 담벼락 위에는 색깔을 바꾸며 익어가는 열매들이 여전히 송골송골 맺혀 있다.

오래 함께 산 두 사람의 수많은 사연처럼. <Harry>